'한겨레에 물들다.'

 

저의 한겨레 입성기를 한 마디로 정리하는 말입니다. 한겨레 작문시험 제시어였던 '물들다'를 활용했습니다. 

지난 5월, 한겨레 채용공고가 뜨자 매우 분주해졌습니다. '기자노동은 이런 거다, 언론의 역할은 이렇게 해야 하는 거다'라는 모습을 저에게 가르쳐준 한겨레이기에 꼭 입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정독했던 한겨레 20년사를 담은 <희망으로 가는 길>을, 자기소개서를 쓰는 단계에서 다시 한번 통독했습니다. 한겨레가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신뢰도 1위 한겨레를 만들어오신 분들의 땀과 노고를 느꼈습니다. '과연 내가 이분들과 함께 일할 깜냥이나 자격이 되는가'하는 가난한 마음이 드는 반면, '이분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도전의지를 굳게 다졌습니다. 

이후 각 단계의 전형을 꼭 통과하고자 밤을 지새우며 공부했습니다. 그때마다 저의 부족함을 느끼며 더욱 준비하고 갖출 것이 많음을 절감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들이 행복했습니다. 소홀함 없이 정성껏 각 과정에 임했습니다.  

특히 합숙에서 과제시간은 긴장감 넘쳤지만,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 같았던 회식자리는 즐거웠습니다. 특히 심사위원님들께서 허심탄회하게 말씀나눠주시고, 저희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특히 심사위원님들 스스로 큰 불편을 감수하시면서까지 블라인드 형식을 통해 저희들에 대한 일체의 편견을 제거하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은 몹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날 밤 얼큰한 기분에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 한겨레. 알면 알수록 더 끌리는 당신. 더욱더 입사하고 싶다."  

최종면접날 아침 한 뉴스를 봤습니다. 닉이란 사람이 길이 196미터, 너비 5센티미터의 외줄에 의지해 고지대의 바람과 폭포의 습기를 뚫고 나이아가라 폭포 횡단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이 무모한 도전에 성공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꿔왔던 꿈입니다. 마음을 먹는 순간 불가능은 더이상 불가능이 아닌 것이 됩니다." 

이 말을 듣고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나이, 에둘러 돌아온 길 등 다른 수험생에 비해 분명한 아킬레스건이 있지만, 기자를 향한 꿈의 크기와 질은 누구보다도 진실되다라는 내적 확신이 있었습니다. 한 달 남짓의 한겨레 전형과정은 저의 실상을 바로 보고, 저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좀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기쁨과 감사의 시간들이었습니다. 한겨레는 역시 스치기만 해도 배울 점을 주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언론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시절부터 독자로서 한겨레에 물들었고, 이후 줄곧 예비언론인으로서 한겨레 기자로 물들기를 바라왔고, 마침내 한겨레 기자로서 한겨레에 물들게 되는 귀한 삶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1년 전 어느날, 여자친구가 제 이름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제 이름의 종성인 'ㅁ ㅠ ㅁ' 을 끄집어냈고, 이를 '마음(ㅁ)과 마음(ㅁ)을 이어주는 다리(ㅠ)'라는 해석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몹시 감동했습니다. 곧바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같은 뜻을 이루는 데 있어 저만의 깜냥으로는 부족하지만, 한겨레에서는 가능하다는 굳은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면서, 세상과 사람들의 다리(橋)가 되는 기자가 되기 위해 저의 다리(脚)를 건각으로 단련하는 데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한겨레에 물드는 과정에서 체험한 일련의 깊은 감동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 감동을 서랍 속에서 시시때때로 꺼내보며, 변질되지 않고 '첫마음'을 유지하는 기자의 삶을 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