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로 ‘색’을 입히는 아나운서


고새롬

 

 

그 동안 제 인생의 제목은 ‘빈 문서’였습니다. 빈 공간을 하얀 캔버스 삼아 스케치했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발품을 팔아 좋은 붓을 사고, 물감을 구하고, 색을 입혀나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림의 제목, 제 인생의 제목이 생겼습니다.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있었던 KBS라는 글자를 품은 제 그림의 제목이 말입니다.

 

KBS 정기공채의 아나운서가 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매 전형마다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다는 자세로 임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전형에 제가 참여할 수 있을지 여부를 모르기 때문이었죠. 정말 후회 없이 임하고 싶었습니다.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저의 이야기를 많이 녹여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야 저만의 색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아나운서가 되는데 어떠한 관련이 있고, 아나운서가 돼서 어떤 부분에 기여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떠오른 두 가지 생각은 통일시대의 KBS의 역할, KBS만이 가지고 있는 클래식FM 방송이었습니다.

 

‘오늘 뉴스에서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했다고 난리가 났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북한이 우리나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난리가 났지?!’ 초등학교 2학년 때 썼던 일기를 중학생 때 보게 되었고, 그 이후 한반도의 통일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대학생 때도 복수전공으로 북한학을 선택했죠. 한반도의 통일시대를 열어 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KBS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KBS 통일방송 연구’ , ‘한민족 방송’ 등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한 국내 유일하게 전문적으로 클래식FM 방송을 하는 KBS와 저와의 인연을 생각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클래식 FM을 통해 음악을 들려 주셨던 아버지께서 클래식FM 애플리케이션도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 일화를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클래식FM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있죠. 이처럼 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수신료의 가치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이후 카메라테스트에서는 기교 부리기를 과감히 버렸습니다. 최대한 담백하게 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일부러 톤을 다운 시켜서 두껍게 내는 목소리가 아닌 제 목소리의 색깔을 살리고자 했습니다.

 

2차 필기전형을 준비할 때는 손에 파스를 붙여가며 준비했습니다. 모든 문항이 서술 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손으로 쓰는 작업에 익숙해 져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한 편의 글을 쓴다는 마음으로 ‘절대량’을 채우고자 했죠. 또한 평소 좋은 글귀를 읽거나 들으면 메모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클래식 FM을 들을 때도 DJ의 좋은 멘트를 들으면 메모해 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라디오는 소리에 희로애락을 담아 청취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매체이기에 참신하고, 심장에 와서 ‘철썩’ 달라붙는 표현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논술을 쓰는데도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주장과 근거를 확실하게 제시하는 것에 맞춰나가면서도 표현의 참신성을 살리고자 했던 부분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3차 실무면접에서는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1차, 2차 전형 때와는 달리 3차 때 부터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선배님들과 대화할 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미소가 밑바탕이 된다면 더 편안하고,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장점을 발견해 저를 ‘뽑아주고자’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있는 선배님이라고 마인드컨트롤을 해 나갔습니다.

 

4차 최종면접. 면접장 앞에서 대기 할 때 우연히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상량, 1975년 6월 16일’

 

6월 16일. 상량이 올려 진 날이 제 생일과 같아서 무언가 모를 힘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좋은 기운을 간직하고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KBS의 큰 어르신들께 인사드리러 간다는 생각으로 차분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3차, 4차 면접을 준비할 때는 참으로 고독했습니다. 이 전형을 거친 선배님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지, 왜 꼭 아나운서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문자답’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제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누군가가 대신 해 줄 수 없고, 내가 ‘나 자신’ 에 대해 알고 그것을 ‘말’ 로 표현하는 작업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값졌습니다.

 

故 장기범 아나운서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 말을 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었다. 그것은 보다 깊은 탐구와 오랜 사색과 진실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과정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 이는 3차 전형 때 ‘마지막 하고 싶은 말’에서 제가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방송에 임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온 마음을 다해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진짜 이를 실천할 수 있는 ‘KBS 아나운서’가 되었네요.

시청자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말’ 로 우리의 삶에 ‘색’을 입히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습니다.

 

깊은 탐구라는 붓과 오랜 사색이라는 물감, 그리고 진실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과정이라는 스케치 과정, 그리고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세상이라는 그림을 그려나가 제목을 붙이는 아나운서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