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만 안 하면 취직한다 - SURE, 기자 이수정 

Job Hunting Data 구직기간 1년 | 지원횟수 200회쯤 지원회사 가리지 않음 | 지원분야 역시 가리지 않음 

딱 내 얘기네!” 아이템을 받고 무릎을 쳤다. 취직 때문에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뒤늦게 빛 본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 ‘이렇게 하면 취업한다’식의 조언은 못하지만 ‘취직하고 싶으면 나처럼 하지 마라’는 이야기는 해줄 수 있다. 

별명 ‘까만 봉다리’ 
토익 점수도 없고 어학연수, 해외 배낭여행 경험도 없었다. 괜찮은 학점과 시늉만 냈던 학회 활동말고는 이력서에 단 한 줄도 보태 쓸 거리가 없었다. 떨어지는 게 너무도 당연했다. 게다가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자라’식의 70년대식 자기소개서를, 그것도 지원 회사 이름만 바꿔 달고 들이민다는 것 자체가 뻔뻔스러운 일이었다. 마음만 급했다. 문제가 뭔지 차근차근 따져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PC방에 틀어박혀 사발면만 먹으면서 구직 사이트를 뒤졌다. 가능한 곳은 모두 지원했다. 대기업, 중소기업, 벤처회사, 금융회사, 영세업체까지. 낮은 학력을 원하는 기업에도 마구잡이로 원서를 보냈다. 하루 10여 군데, 많으면 20여 군데까지 쑤셔넣다 보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다. 소주병을 까만 비닐봉지에 싸서 병나발을 불다 학교 친구들에게 들킨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머리 앞 부분이 하얗게 빠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초조해도 회사는 골라 가라 
가뭄에 콩나듯 면접도 봤다. 결과는 형편없었다. 한번은 영어로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주문에 “죄송합니다” 한마디를 남기고 나와버린 적도 있었다. 패션회사 면접 때 철 지난 구식 트렌치코트를 입고 갔다가 “나 참, 면접에 버버리 입고 오는 사람은 처음 봤네”란 말도 들었다. ‘이러다 영영 백수되겠다’는 불안감에 토익시험도 보고 자기소개서도 고쳐 나갔다. 드디어 모 학습지 회사와 외국계 보험회사로부터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열흘을 못 채우고 나와버렸다. 깨닫는 바가 있었다. ‘합격통지서를 받고도 기쁘지 않은 회사에는 처음부터 원서를 넣지 말자.’ 내가 원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이 회사에 다니면 즐거울 것 같다’는 막연한 ‘감’만으로 골라 지원했다. 원서 넣는 횟수가 적당하게 줄어드니까 지원 회사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게 되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모든 정보를 몽땅 프린트해서 정독한 후에야 원서를 쓰는 습관을 들였다. 

필기시험이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다 모 유통회사 홍보실에 입사했다. 불행히도 회사 생활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딱 하나,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할 보도자료를 쓰는 일만은 재미가 있었고 회사를 다니면서 언론사와 잡지사에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형편없는 영어 성적이 발목을 잡았지만 서류에 합격한 곳도 있었다. 제대로 준비한 적이 없는 만큼 필기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 ‘시험 보는 회사를 겁내지 말자.’ 오히려 필기시험 성적이 서류상의 단점을 커버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다’ 싶으면 꽉 붙들어라~ 
‘기자직 O명 모집’. 기대도 안 했던 중앙M&B 서류전형에 합격했을 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상식, 작문, 취재 및 기사작성 테스트, 기획안 테스트, 면접… 겹겹이 둘러싼 산을 하나하나 넘으면서 욕심이 생겼다. ‘여기가 내 일터다’ 마음을 굳혔고, 떨어지면 정말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울 것 같았다. ‘아무데나 일단 취직을 해야겠다’가 아니라 ‘이 일을 꼭 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생기다 보니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긴 전형절차, 엄청난 경쟁률, 하루 종일 계속되는 테스트로 진이 빠지고 피가 말랐다. 결국 최종 합격을 알리는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1 1 학교에서 발간하는 영어잡지, 교내 특강 책자들은 싸고 질 좋은 교재다. 
2 졸업한 선배들의 명함을 모아둔 명함철. 모르는 게 있으면 수시로 전화해 선배들을 귀찮게 했다. 



[자료출처 - 팟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