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무기’로 공략하라 - 뉴스위크 뉴스팀 기자 이진경 

Job Hunting Data 구직기간 1년 6개월 | 지원횟수 40~50회
지원회사 대기업, 외국계회사, 벤처회사, 잡지사 등 | 지원분야 마케팅 → 영어 관련직

토익 990점, 영어회화 능통, 만점에 가까운 학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이력서를 갖고도 줄줄이 낙방의 쓴잔을 들이켠 사연.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은 취업전선에서도 유효하다.

이직, 또 이직
졸업 즈음,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해두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반도체 검사 장비를 취급하는 벤처회사 해외영업직. 수시로 외국인을 만나고 업무상 외국에 나갈 기회도 많았지만 여직원을 비서처럼 부리는 회사 분위기가 싫었다. 열댓 군데 대기업 마케팅직에 지원했지만 서류전형에서 다 떨어졌다. 좌절감을 견디다 못해 로스쿨로 유학갈 생각을 하게 되었고 외국계 법률회사에 인턴으로 취업했다. 다니다 보니 법이란 게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고 학비도 부담스러웠다. 유학 계획을 철회하고 사표를 낸 후 외국계재보험사 브로커 밑에서 몇 달 일했다. 일년 남짓한 기간 동안 회사를 무려 세 군데나 옮겨다닌 것이다. 어디에서도 만족하지 못했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새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남자 친구, 그리고 Subjob을 가져라
만점에 가까운 학점, 훌륭한 토익 성적, 나름대로 화려한(?) 경력을 갖고도 넣는 족족 떨어질 때. 나는 자기비하에 빠져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취직도 못하는데 밥은 무슨 밥이야” “백수 주제에 뭘 가려” 그럴 때 나를 위로해준 상대는 다름 아닌 남자 친구였다. “네가 못났으면, 못난 여자 좋다고 사귀는 나는 뭐냐?”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제일 멋있다고 늘상 치켜세워줬다. 또 한 가지. 백수인 와중에도 과외 아르바이트는 꼭 붙들고 있었다. 용돈 정도는 제 힘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에 생각할 여유도 생기고 초조함도 덜 수 있었다.

너트와 볼트는 짝이 맞아야 한다.
세 번째 사표를 던지고 완벽한 백수가 된 후.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마케팅직에 수없이 원서를 넣었다. 당시 토익점수가 990점 만점. 모두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죽을 노릇이었다. 누가 봐도 짱짱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결론은 ‘짝 안 맞는’ 너트와 볼트를 양손에 쥐고 낑낑대고 있었다는 것. 마케팅 잘할 사람을 뽑는 자리에 엉뚱하게 ‘영어’ 잘하는 사람의 이력서를 내놓은 것이었다. 내 장점이 뭔지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막연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마케팅직만 고집한 게 문제였다. 전격적인 방향 선회만이 살길이었다.

결국, 영어
관광청 홍보지국, 외국 대사관, 해외영업직, 외국계기업, 외교친선단체… 영어 실력을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곳에 원서를 넣었다. 토익 만점, 4학년 2학기 전과목 영어 수강 및 전과목 A, 벤처회사 해외영업 경력을 자랑하는 내 이력서가 빛을 발하는 순간. 결과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서류에도 붙어본 적이 없는 내가 면접까지 무사통과였다. 여러 개의 합격통지서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뉴스위크 번역기자를 선택했다. 장장 1년 6개월에 걸친 기나긴 백수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1 2년 전부터 정기구독한 뉴스위크지. 면접 때 큰 힘이 되었다.
2 지원한 회사의 전형일자를 기록한 수첩. 불합격 통보를 받을 때마다 한쪽 귀퉁이에 일기를 적으며 마음을 추스렸다.



[자료출처 - 팟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