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법조기자의 하루



이름 : 전지성
나이 : 1972년생
학력 : 연세대 철학과 졸
입사일 : 2003년 12월 동아일보 입사
부서 : 사회1부 기자

안녕하세요. 동아일보 사회1부 법조팀의 전지성입니다.
지난해 12월 8일, 동아일보에 입사해 6개월간의 수습교육을 마치고 비로소 '기자'가 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여러분보다 딱 1년 먼저 입사한 선배가 되겠군요. 그래서 아마 여러분들의 심정을 비교적 잘 알 것입니다. 고쳐 쓸수록 점점 식상하고 유치해지는 자기소개서를 들고 답답해 할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겨우겨우 입사원서를 접수시켜 놓고 마음이 들떠 손에도 안 잡히는 공부를 우격다짐하느라 괴로워하는 심정도 저나 제 동기들이 아마 가장 비슷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제게는 절묘한 논술비법이나 쪽집게 시험대비책은 없습니다. 그러기엔 기자로서 제 경험이 너무 짧습니다. 다만 이곳 법조팀에서 제게 일어난 작은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내 신문인 '동우(東友)'지를 통해 동아일보 선배들께 처음 인사를 드릴 때 "법조기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힘들지만 중요한 일이라는 소문에만 매료된 채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게 내 할 일이다"며 호기를 부렸습니다. 힘들고 고된 일을 맡을수록 제 능력에 대한 평가가 분명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사건을 단독으로 기사화했을 때 느끼는 짜릿한 기분에도 중독돼 보고 싶었습니다.

법조기자로 배치된 첫 날 이런 모든 욕심들이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그런 욕심을 실현시키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독기사는 고사하고 어느 기자나 쓰는 평범한 기사를 실수 없이 마감하는 것도 벅찼습니다. 초보기자인 제가 감당하기에는 굵직한 사건도 적지 않았죠.

안기부의 계좌에서 나온 1197억원의 돈이 민자당과 신한국당의 선거자금으로 유용됐다고 해서 4년 가까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안풍(安風)사건'의 당사자들이사실상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때 그 동안의 사건전개를이해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습니다. "오랜 외국 생활로 지친 내 영혼의 외로움을 달래 줬던 제주의 검푸른 바다, 광주의 뜨거운 대지와 재회하고 싶다"는 송두율씨의 절절한 최후진술을 들을 때도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한 가지라도 더 중요하고 남다른 사실을 기사에 더 넣어 보려고 욕심 부릴수록 사실을 틀리지 않게 전달하는 것에도 예민해집니다. 재판과 판결이 많을수록 습관적으로 긴장합니다. 그럴수록 제 얼굴은 어느 때보다 편안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지요. 온통 타사 기자들로 둘러싸인 기자실에서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초보 법조기자인 저도 제 취재처인 법원에서만큼은 동아일보를 대표하는 기자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똑같은 기사를 써도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를 더 주의 깊게 뜯어보는 타사 기자들의 태도를 보면서 자부심과 긴장은 더 커집니다.

법조기자로서의 생활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얼어붙었던 욕심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언제까지 초보기자일 수는 없는 법. 하지만 그 욕심을 성취하는 과정이 얼마나 집요해야 하는지도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선배들께서는 곧잘 독자나 취재원들이 제 이름 석자로 동아일보를기억할 수 있는 날을 꿈꾸라고 하십니다. 물론 그 꿈을 잊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바쳐야 할 성실함과 끈기야말로 제가 동아일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동아일보의 문을 두드리시는 여러분, 그 문 안에 어떤 것이 기다릴지는 모두 여러분께 달려있습니다.

[자료출처-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