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보프라자 영사기사 이주웅, 스크린에 빛으로 수놓은 35년 세월

 

여름의 끝자락에 놓인 8월의 어느 오후. 을지로에 있는 명보극장은 한여름의 소란에서 한숨 돌린듯 한가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새 머리 속에선 단어들이 짝을 찾아 맴돈다. 

 

빛의 마술사, 아니면 은막의 아티스트? 조금 뻔한 은유들을 헤아리고 있는 사이 ‘시네마 천국 사람들’이란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이름을 새길 분이 얼굴을 보이셨다. 시네마 천국의 천사장은 단연 영사기사일 터. 맥스무비가 극장이 있는 풍경에 불러세운 사람은 명보극장 영사실의 이주웅 실장님이다. 

 

실장님의 온화하고 따사로운 미소는 영사실 조그만 창을 통과해 스크린을 환하게 비추는 빛의 비밀을 일깨웠다. 붓 대신 잡은 영사기, 35년지기 벗 되어 이주웅 실장님은 47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연세가 쉰다섯 되셨다. 

 

영사기사 경력이 어언 35년. 명보극장 한 곳에서만 26년째 일하고 계신다. 강산이 서너번은 족히 바뀌었을 시간. 인생의 반을 보내신 명보극장도 세월의 변화에 몸을 맡겼다. 93년 단관에서 5개관이 들어선 복합극장으로 탈바꿈했고 며칠 전부턴 맨 꼭대기에 있는 5관부터 의자교체 공사에 들어갔다. 

 

<엽기적인 그녀>의 대형 포스터가 붙어있는 자리엔 차태현과 전지현 대신에 신성일, 엄앵란의 얼굴이 새겨졌을 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 실장님이 영사일을 하게 된 건 당신의 말 마따나 ‘운명’ 같은 것이었다. 어렸을 적 그림과 영화를 좋아했던 19살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교복을 벗어 제끼고 극장간판 그리는 곳에서 물감 타고 붓 잡는 법을 배우는데 땀을 쏟고 있었다. 

 

마침 영사기를 돌릴 사람이 없는 곤란한 상황이 생겨 이 간판견습생은 ‘대타’로 생전 처음 영사기를 잡게 되었다. “나쁘지 않았다”는 말로 기억해내신 그날의 소감이 35년을 영사기 뒤에 세운 ‘운명의 계시’였을 터. 그렇게 우연히 붓 대신 잡은 영사기가 실장님의 손 마디마디에 세월의 흔적을 아로새기며 평생의 동반자가 된 셈이다. 

 

“옛날엔 영사기사가 꽤 인기가 있는 직업이었지” 회고록의 첫 페이지를 펼쳐들며 꺼낸 실장님의 말에 벌써부터 추억이 아른거린다.‘온종일 영화를 봐서 좋겠다’는 철없는 질문에 실장님은 고단한 기색부터 내비치신다. 

 

첫회 상영 한 시간 전이 출근시간, 그리고 퇴근은 마지막회 상영이 끝나는 시간. 상영시간표가 그대로 근무일지가 되는 셈이다. 하루 업무시간이 12시간 이상. 일어나서 다시 잠들기까지 사이에 놓인 시간과 별 차이가 없다. “너희들을 우리 마누라보다 더 많이 본다” 실장님이 극장 여직원들한테 건네시는 농담이다. 늘 자정녁이 되서야 집에 들어가니 가족들 얼굴 보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라고. “영사기사 일이란게 크게 고되거나 노동량이 많은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겨 그것이 흠이다.” 

 

사나흘에 하루씩 휴무가 있으니 한 달이면 8일 정도를 쉬신단다. 그 때가 좋았지 “<엽기적인 그녀>, 그거 재밌더라구. 아까 전에도 잠깐 봤는데 웃겨” 영화 속에 푹 파묻혀 살 것 같지만 정작 영사기사가 된 후 앉아서 본 영화는 ‘고작’ 대여섯편 정도라신다. 정작 스크린의 주인장으로 계시지만 맘 편히 보기보단 눈동냥으로 기웃해서 보실 때가 더 많다고 한다. “조그만 영사사고라도 생길까봐 항상 바짝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영사기사가 필름을 영사기에 걸기만 하면 느긋하게 휴식할 수 있는 직업이 절대 아닌 탓이다. 실장님이 좋아하시는 배우는 <왕과 나>의 율 브리너, 요샌 코미디 영화에 재미를 붙이셨다. “사대문 안에 10대 극장이 군림하던 때가 있었지. 건너편에 있는 스카라 극장 하고 얼마전 없어진 국도극장, 공사중인 대한극장도 있었지. 그때는 극장마다 특색이 있었어. 명보는 여성(멜로)영화로. 스카라는 홍콩과 중국영화, 그리고 국도는 한국영화를 주로 틀었지. 스카라에 홍콩영화가 걸리는 날이면 아주 인산인해를 이뤘었지.” 말씀하시던 눈가에 그리움이 젖어든다. 

 

“그때는 영화 하나가 보통 5개월은 갔다고. 그런데 요샌 장사 안되면 일주일 하고도 간판을 내리니.” 지금이야 멀티플렉스 등살에 단관으로 버텨내기가 힘든 세상이지만 못내 단관 시절이 그리우신 모양이다. 그 표정에 안타까움이 살짝 스친다. 

 

“명보극장이 예전엔 1천 2백석짜리 단관이었어. 3층까지 있었지. 영사실에서 내려다 보면 극장안이 관객들 머리로 아주 새까맸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널직한 극장에 익숙해진 시야에 채 100석도 되지 않는 요새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성에나 차실까. 전광판이 상영시작을 몇분 단위로 알려주는 것은 요즘에나 가능한 일. “화장실 갔던 사람이 영화가 시작하는거 보고 바지도 올리지 않고 극장 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그랬다니까. 그거 보고 관객들은 웃느라 정신없고” 옆 건물에 불이 나서 관객들이 전부 대피하고 그날은 무료로 모든 관객에게 영화를 보여줬던 일도 실장님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영사기사는 ‘천직’, 평생 계속할 터 실장님이 안내한 영사실은 5평 남짓한 아담한 공간. 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을 단속하시는 모습에 일에 대한 세심한 손길이 묻어난다. 영사실에서 나지막히 들리는 필름 돌아가는 소리. 하얀 스크린에 마술을 부리기 전에 외우는 주문같다. 극장 안에서는 <늑대의 후예들>이 한창 상영중이었다. 

 

“소리 좋다, 영화가 재밌다. 관객들이 그런 소리 할 때 제일 보람을 느끼지” 요새 관객들은 예전에 비해 너무 각박해졌다고, 조그만 영사사고에도 항의하는 것을 보면 영 서운한 마음이 생긴다고 하신다. 관객들에게 바라는 것도 소박하다. “그냥 기본적인 에티켓만 지켜주면 좋겠어. 장내에 쓰레기 버리지 말고, 출입문도 조심히 드나들고 말이야” 요즘 젊은 영사기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두 편하고 자투리 시간이 많은 직업만 선호하는 탓이다. “젊은 사람들이 영사일을 안하려고 한다.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영화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땐 해야겠지”. 영사기사는 당신에게 ‘천직’같은 일. “앞으로 얼마나 할지 모르지만 계속 이 일을 해야지” 며칠 전 여름휴가를 내서 다녀오신 주문진이 영 고생길이었다고 말씀하시는 실장님은 어쩌면 피안의 장소인, 어쩌면 치열한 삶의 장소인 영사실로 또 다시 모습을 숨기셨다. 그 손에서 쏘아진 빛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관객들의 눈 앞에 별천지를 펼쳐놓을 것이다. 

 

 

 

 

[자료출처 - 맥스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