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의 어느 월요일 오전 8시 46분, CNBC의 리포터인 마리아 바르티로모(32)는 ‘차고’(뉴욕 증권거래소의 거래장 네 곳 중 한 곳을 지칭)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부스에서 귀에 수화기를 댄 채 정신없이 타이핑을 했다. 그녀의 조수인 니콜 페털라이즈가 “방송 시간이 다 됐어요”라고 말했다. 

 

바르티로모는 통화중이던 월스트리트의 증권분석가에게 “톰, 잠시만 끊지 말고 기다려줘”라고 말했다. 그녀는 판유리 앞에 놓인 높은 의자로 이동한 다음, 귀에 이어폰을 꽂고 마이크를 남옥색 재킷 속으로 넣어 옷깃에 고정시켰다. 의자 옆 작은 선반에 놓인 내선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든 그녀는 증권분석가와 세계 최대의 컴퓨터칩 제조업체인 인텔社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바르티로모는 또다시 톰에게 “잠깐만!”이라며 무인 카메라를 보고는 매혹적인 웃음을 띠며 방송을 시작했다. “상황이 좀더 나빠졌습니다. 로버트슨 스티븐스에서 인텔의 주가를 하향 평가하고 있습니다. 2분 후 자세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그녀는 다시 전화에 대고 “미안해, 톰. 기다려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광고가 끝나자 바르티로모는 다시 카메라를 쳐다보며 방송을 계속했다. “월스트리트에서 대량 매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막 컴팩의 주가가 22% 하락했습니다.” 

 

실시간 정보를 입수해 곧바로 쏟아내는 일에 관한 한 마리아 바르티로모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그녀는 매일 아침 전화로 소식통을 구워삶아 증권사들의 주가 상·하향 평가 정보를 증권사 고객들보다 먼저 알아낸다. 뉴욕 브루클린 레스토랑 주인의 딸인 바르티로모는 현재 미국의 금융뉴스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리포터다. 증권사 임직원들은 누구나 그녀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그녀는 ‘머니 허니’(Money Honey)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타블로이드판 대중신문 뉴욕 포스트紙의 표현이 애칭으로 굳어진 것이다. 

 

미국의 수백만 명에 이르는 투자자들은 CNBC 외에 CNN 파이낸셜뉴스, 블룸버그, 더스트리트.컴, CBS 마켓워치.컴, 그리고 그외 다양한 금융 관련 신문·잡지 등에 의존하고 있다. 

 

주가 예측가들이 시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는 이유는 이들의 견해가 언론매체를 통해 증폭되기 때문이다. 모든 투자자들이 어떤 종목을 팔고 어떤 종목을 사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한발 앞선 정보를 얻고자 하는 상황에서는 정보가 곧 힘이다. 또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고 해서 실제로 처벌받는 것도 아니다. 기자·해설자·분석가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증시의 예측불가능성 탓으로 돌리면서 재빨리 다음날의 최신 정보를 거론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CNBC가 월스트리트 순환계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취재하는 사건의 변동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실무근의 루머가 발단이 됐더라도 단 하나의 부정적인 기사에 회사의 시가총액이 수십억 달러씩이나 뚝뚝 떨어진다. CNBC가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시청률이 높기 때문이다. 돈많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데이트레이더(초단기 주식 거래자)들까지 이 채널에 의존한다. NBC가 1989년 CNBC를 출범시키자 당시 CNN의 테드 터너는 “쓰레기”라고 일축했지만 현재 이 채널의 시청률은 CNN보다 높아졌다. 

 

CNBC는 지난해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왈리드 빈 타탈 알 사우드 왕자측이 보낸 서신을 접수했다. 킹덤 5라는 이름의 요트를 타고 카리브海를 항해중이던 왕자가 개인 위성중계기로 이 방송사의 방송을 수신하려 하니 허가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왕자의 고문은 그 편지에서 “왕자께서는 주로 CNBC 방송을 보고 투자정보를 얻는다”고 썼다. 이같은 관심 덕에 CNBC는 모회사인 NBC의 자산을 연간 2억 달러나 늘려주는 알짜기업으로 탈바꿈했다. 

 

CNBC를 예찬하는 사람들은 아르마니 양복을 입는 부자에서부터 주식투자로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는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증권사와 기업체 사무실은 물론 술집과 레스토랑·헬스클럽에 이르기까지 CNBC 채널을 켜놓지 않은 곳이 없게 됐다. 기업체 최고경영자(CEO)들 뿐 아니라 TV 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Who wants to be a millionaire)의 진행자 레지스 필빈, 테니스 선수 앤드리 애거시, 前 프로미식축구 쿼터백 존 엘웨이, 前 프로농구선수 찰스 바클리, 前 메이저리그 선수 자니 벤치도 이 채널의 열렬한 팬이다. CNBC의 방송 포맷은 스포츠 채널 ESPN의 ‘스포츠 센터’를 모방했기 때문에 출연하는 기자들은 마치 한자리에 모여 슈퍼볼에 관해 이야기하는 미식축구 선수들처럼 보인다. 기자들은 셔츠 차림으로 출연, 방송중에 전화도 걸고 서로 잡담도 일삼는다. 

 

바르티로모는 현장 리포트를 위해 거래소 객장에 나가서는 증권사 직원들의 고함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기 위해 고함을 쳐야 한다. 아마추어 킥복서인 바르티로모는 그런 남성 중심의 세계(트레이더들이 일부러 그녀에게 부딪치고 지나가기도 한다)에서 도전적이고 거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한번은 그녀가 현장 리포트를 하는 도중 한 트레이더가 그녀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기사가 한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바르티로모는 한 동료에게 “만일 누가 내 엉덩이를 만지려 했다면 생방송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작자를 때려 눕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레이더·증권사 직원·전문가 등 3천여 명이 화려하게 장식된 높은 천장 아래 바삐 움직이고 있는 객장에서 바르티로모는 거대한 전광판에 녹색으로 표시된 최신 주가정보를 응시하면서 급히 메모를 시작한다. ‘시스코 3─ 하락, 아마존 6 하락, 인텔 3─ 하락.’ 

 

그녀는 멀리 있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다우 존스 지수가 72포인트 하락했다고 전한다. 그녀가 최신 주가소식을 빠르게 전달하는 동안 조수인 페털라이즈는 그녀에게 새로운 수치들을 건네준다. 거래장에서 마주칠 때의 호리호리한 모습과는 달리 거래장 여기저기 설치된 TV에 비쳐지는 바르티로모의 모습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CNBC의 숨가쁜 실시간 접근방식의 취약성이 또다시 드러났다. 그녀가 대량 매도로 인한 주가하락을 경고했는 데도 다우 지수는 이내 상승세로 돌아섰다. 뉴욕 증권거래소의 객장에서도 미래를 예측하기란 이처럼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그날의 장은 다우 지수 1백65포인트 상승으로 마감됐다. 

 

바르티로모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에 낙담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꺼이 ‘머니 허니’ 역을 자처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자신이 금융가 솔 스타인버그의 아들 조너선 스타인버그와 약혼했다는 기사가 피플誌에 실렸을 때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심지어 사진기자들 앞에서 조너선의 무릎에 앉는 포즈를 취할 정도로 의연하게 대처했다. 시청자들이 바르티로모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의 외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진짜 이유는 그녀의 리포팅 때문이다. 바르티로모는 과거 수년간 방송사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보냈다. 그녀는 1989년 뉴욕大를 졸업한 뒤 CNN에서 제작자의 조수로 일했다. 그후 부제작자·작가·제작자·자료편집자를 거쳐 ‘머니라인’의 명앵커 루 도브스와 함께 일하게 됐다. 바르티로모의 꿈은 리포터가 되는 것이었지만 현장 제작일에도 만족했다. 현장에 나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원고를 쓰고 편집한 다음, 리포터가 자신의 기사를 카메라 앞에서 읽는 모습을 지켜봤다. 

 

1993년 도브스는 바르티로모를 제작총괄 담당자로 진급시켰다. 그러나 어느날 저녁 그녀는 도브스를 불러내 “승진시켜준 것은 고맙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내 적성에 더 잘 맞는다. 난 감각이 있으며 월스트리트에는 내가 아는 소식통들도 많다”고 말했다. 도브스는 그녀의 얘기를 다 들어주었지만 단호했다. 그는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도브스는 그녀가 리포터로서 방송에 나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바르티로모는 오디션용 테이프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브루클린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언어교정학원도 다녔다. 처음에 제작한 데모테이프들은 대부분 엉망이었지만 결국 그럴 듯한 장면을 골라낼 수 있었다. 그녀는 그 테이프를 CNBC에 보냈고 곧 채용됐다. 바르티로모가 그 사실을 도브스에게 전하자 그는 “CNBC에서는 배울 게 없다. 어떻게 그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할 수 있는 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바르티로모가 거래소 객장에서 리포팅을 시작했을 때 CNN의 前 동료들은 도브스가 진짜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라고 말했다고 그녀에게 전했다. 그러나 CNN도 1년 뒤에는 객장 리포팅을 하기 시작했다. 

 

금융 전문기자들에게는 소식통을 만드는 것이 생명이다. 바르티로모는 프루덴셜社의 랠프 어캠퍼라 같은 유명 분석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바르티로모가 그의 최신 예측에 대한 냄새를 맡고 정보를 캐기 위해 그의 사무실을 쳐들어가면 그는 농담삼아 “카메라 좀 치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중개인들은 바르티로모 때문에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한 중개인은 “당신이 내 밥줄을 끊고 있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객들이 바르티로모의 프로그램에서 정보를 더 빨리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중개인과 거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바르티로모의 대답은 단호하다. “나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거나 말거나 선택은 자유죠. 당신이 아니라도 다른 곳에서 정보를 구할 수 있어요.” 

 

주가가 치솟든 곤두박질치든 미국 전역을 강타한 주식투자 열풍은 새로운 저명인사를 만들어냈다. 바르티로모는 ‘레지스 필빈의 모닝쇼’의 새로운 공동진행자가 되고 싶으며 곧 오디션도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캐티 쿠릭이 진행하는 NBC의 ‘투데이’에 출연해 자신이 새로 맡을 신설 금요 프로그램 ‘마켓 위크’에 대해 소개했다. 바르티로모는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를 필빈과 공동진행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서는 “레지스는 사람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 애쓰지만, 나는 억만장자가 되게 해준다”며 일축했다. 

 

최근 증시가 불안정해 CNBC에서 바르티로모가 전하는 증시뉴스만 믿고는 백만장자가 된다거나 큰 돈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졌다.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인가. CNBC 모닝쇼 ‘스쿼크 박스’의 패널리스트중 한 명인 조 커넨은 바르티로모 덕분에 자신들이 보잘 것 없는 케이블 뉴스에서 일하는 신세를 면하게 됐다며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 

 

 

이 글은 하워드 쿠르츠의 ‘포천 텔러스: 돈과 매체, 그리고 조작에 대한 월스트리트 게임의 내부’(‘The Fortune Tellers: Inside Wall Street’s Game of Money, Media and Manipulation’·The Free Press刊)에서 발췌한 것이다. ⓒ2000 by Howard Kur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