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수습기자로 6개월전 문을 두드렸던 12명이 1일부터 정식 기자로 출발합니다. 이들 기자들은 ‘탈(脫) 수습’을 앞두고 조선일보 사보에 지난 반년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脫수습기자들의 ‘솔직 토론’이란 제목의 글에는 요즘 젊은이들이 조선일보 안팎을 보는 시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정식발령을 코앞에 둔(7월 1일) 42기 수습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조선일보 기자’란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나간지 6개월. 취재의 최일선에서 본사에 대한 외부의 공격에 그 누구보다 첨예하고 신랄하게 부딪혔을 그들은, 가슴 깊이 담아두었던 아픔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젊은 피들’의 목소리는 외부를 향한 것도 있지만, 내부에 대한 비판도 적지않다. 사보는 예년의 탈(脫)수습기 대신 이들의 ‘솔직 토론’을 싣기로 했다. 

◆ 취재현장의 아픈 경험들 
= 한총련 출범식을 취재하러 갔다. 상황실에 들어가 조선일보에서 왔다고 하니 날 ‘야만인’ 보듯 쳐다보더라. 최소한의 지성도 양심도 넌 없냐는 듯한 눈빛, 키득키득하는 비웃음.... 다신 들어오지도 말라고 했다. 다른 기자들에겐 다 주는 기본적인 보도자료나 스케줄도 난 못받았다. 또 어떤 정보계 경찰은 다 공개되는 행사 일정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옆에 있던 다른 기자가 “저 사람은 조선일보에 대한 감정이 안좋으니 네가 이해하라”고 말하더라. 

= 한겨레 기자 하나가 인사를 나눌 때 조선일보 명함은 안받겠다고 했다. 결국 명함을 주고 받았지만, 한 개인이 속한 조직의 이미지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규정한다는 것에 서글펐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든다. 수습 기간은 그 조직의 매커니즘에 개인을 맞춰나가는 과정인데, 그동안 개인이 가졌던 건강한 부분을 상실시키는 게 아닐까하는 회의가 든다. 

= 사회부 내근을 하면 항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 교총 사람의 전화를 받았는데, 왜 (기사에) 전교조를 앞에 쓰고 교총을 뒤에 쓰냐고 항의했다. 어떻게 조선일보가 전교조의 주장을 먼저 소개하냐며 기존의 논조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얘기였다. 또 요즘 본지를 보면 시원스럽지 않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참 혼란스럽다. 조선일보가 기존의 비판 세력, 기존의 지지세력 양쪽에서 공격받는 것 같다. 

= 우리들 대부분이 주위로부터 “왜 하필이면..., 기왕 들어갔으니 네가 바꾸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같은 경우엔 택시기사한테도 그런 말을 들었다. 젊은 사람들에겐 안티조선이 지성의 상징으로 공식화된 것 같다. 

= MBC 동기 하나가 대놓고 “난 안티조선”이라고 말했지만 시간 지나고 나니 “이렇게 괜찮은 친구들이 조·중·동에도 있을 줄 몰랐다”고 말을 바꾸더라. 그들이 가진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뼈저리게 느꼈다. 

= 전교조 관련 기사를 썼는데 다른 기자들은 우리 기사 헤드라인을 보더니 사실을 왜곡하면 어떡하냐고 타박했다. 그들은 기사가 아니라 제목만 보고 비판하면서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그들을 상대로 설득한다는 게 무의미한 것 아닐까. 일일이 신경쓰면 나만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 집회 기사엔 경찰추산 인원을 써넣는데, 조선일보는 경찰 추산을 명시하고 한겨레는 그러지 않았다. 나중에 들리는 말은 조선일보는 참석 인원을 축소하고 한겨레는 객관적으로 보도했다고 하더라. 

안티조선단체 기자회견을 취재하러 갔다. 오마이 뉴스 기자가 오더니 조선일보 기자 아니냐며 나가달라고 했다. 그때 마침 선배 전화가 핸드폰으로 걸려와서 받고 나갔다. 나중에 그 사람이 쓴 기사를 보니 “조선일보 기자가 참석했는데 지적을 받고 황급히 사라졌다”고 썼더라. 난 일이 있어서 대답 못하고 간 건데.... 발뺌한 것처럼 도망쳤다는 그 뉘앙스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할까. 조선일보와 안티조선과의 간극이 그만큼 큰 걸까. 

◆ 내부에서 느끼는 문제점들 
= 선후배간, 또 부서간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 같다. 때로는 부서간 협력이 필요한 일도 있을텐데, 그게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적인 교류도 거의 없다고 느꼈다. 수습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수습을 끝내면 동료들과 인간 관계가 맺어질 수 있는지 의문을 갖는 동기도 있다. 어떤 선배들은 그런 건 기대하지 말라고 충고해 맥이 빠졌다. 

= 입사 전에 생각했던 신문사 편집국의 이미지는 항상 시끌벅적하고 평기자와 데스크가 맘껏 토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안에 들어와보니 그게 아니다. 의사소통은 항상 일방적인 것 같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서로 오가는 게 없다, 심지어 아이디어 회의때도 기사가 되는지 안되는지 여부만 따지지, 평등한 의사소통이 없다. 기사나 편집 결정권이 데스크 중심이다. 

= 선배들이 현장 분위기를 많이 물어본다. 데스크의 지시보다 현장 기자의 판단을 더 존중해 주는 분위기로 바뀌는 것 같다. 그런데 얼마전 서해 꽃게잡이 기사를 보면, 한겨레와 조선의 논조가 극가 극을 달렸다. 기자가 현장에서 느꼈을 것을 썼을텐데,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그게 개인 성향 때문인지, 이미 조직 분위기에 함몰돼서인지 궁금해진다. 

=최근 중앙일보가 편집을 완전히 바꿔 주말 매거진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편집도 시원시원하고 사진도 좋다. 아예 중앙에는 주말매거진 전담팀에 있다고 하더라. 그런 과감한 투자가 우리는 없는 것 같다. 투자는 안하면서 항상 다른 매체와 비교만 한다. 그러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 새내기들의 제언 
= 말 안되는 안티조선도 있다. 하지만 약자의 입장에 서서 조선일보를 강자의 대변 신문이라고 보고 비판하는 안티조선도 있다. 그들이 본지에 대해 갖고 있는 심정은 섭섭함이다. 전농 집회 때 ‘조선일보 기자’라고 한 취재원에게 다가서니 “딴데 가서 물어보세요”라고 시큰둥하더니 “젊은 기자니까 통하겠지”하면서 얘기를 받아줬다. 그런데 때 마침 취재수첩이 없어 A4 종이에 받아 적었다. 그러자 그쪽에서 “역시 너희들은 성의가 없고 대충대충한다”면서 화를 내더라. 황학동 재래시장 회장을 만났는데, “강자 입장만 들어주는 신문”이라고 쏟아부었다. 안티조선 중에는 마이너리티 입장에서 조선일보에 대해 섭섭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무시하면 안된다. 

= 70대 이상 된 화교협회 회장을 만났는데, 본지에 대한 악감정이 대단했다. 인터뷰 승락해서 만났는데 사실 날 혼내려고 부른 것이었다. 그 사람 말이 “조선일보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관념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이 다른 취지의 글을 3번이나 기고했지만 다 반려했다”고 항의했다. 화교 사회에서 목소리 꽤나 있는 사람인데, 무시당했다며 굉장히 기분 나빠했다. 나만 괜히 곤란해졌다. 독자 서비스 센터가 좀더 세심하게 배려해야하지 않나. 그런 논지를 본지가 수용할 수 없다면 명확하게 설명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쉽다. 

= 우리 신문은 ‘보수 우익’이란 방향이 설정돼 있다. 그렇지만 보수 꼴통이 아닌 ‘건전한 보수’란 평판을 들을 수 있게 사회 각층에 귀를 많이 열어야 한다. 

= 특검에 있었는데 조선일보 영향력이 대단하구나 느꼈다. 1단짜리라도 우리가 쓰면 반향이 대단했다. 그만큼 우리 영향력을 인식하고 한국의 여론을 이끌어간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 DJ 정권 때는 조선일보가 나이스(NEIS) 문제에 대해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보도를 했다고 하더라. 그러나 지금와서는 우리가 전교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스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전교조의 찬반 여부를 떠나 인권 문제를 계속 거론해줘야 일관성이 있는 것 아닌가. 


[자료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