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펜을 든지 올해로 8년째, 정치부 병아리 기자로는 이제 막 4개월째를 지난다. 날마다 정치인들의 숲을 헤매고 말들의 바다를 표류하다 보면 마치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다. 


돌이켜보면 처음 어색한 양복을 입고 조이는 목을 어루만지며 신문사 문을 들어선 이래 늘 새로운 출발이었다. 최루탄으로 시작해 최루탄으로 끝난 수습기간 6개월은 물론 이후의 사회부, 문화부, 체육부, 국제부를 거쳐 지금까지. 

매번 낯선 곳에서 허물을 벗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환상과 나를 깨는 작업이다. 언론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설렘은 차가운 현장의 얼굴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첫 인연부터가 그랬다. 수천명의 학생들이 경찰의 포위망에 갇힌 1996년 여름 연세대에서 기자로서 나의 내면은 형성된 것인지 모른다. 최루탄 가루가 내려앉은 매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달랑 손수건 하나로 잠들던 `사수대'들의 열정과 무력진압의 공포와 싸우던 어린 학생들의 깊은 눈동자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가슴속의 화인(火印)이다. 

늘 팽팽한 긴장과 인내가 필요한 지난 8년간을 지탱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정말 이 일에 맞는 인간일까'를 고민하면서 흘러온 지난 세월을 견딘 답은 무엇이었을까. 

성장이다. 일이란 놈은 지긋지긋하지만 때로 나를 벗어나게 하는 묘한 놈이다. 특히 사람속에서 모든 것이 나오는 기자의 일은 더욱 그렇다. 이른 새벽 정치인들 집 문을 두드리거나 향내 가득한 상가(喪家)의 이방인으로 취재수첩을 들이대는 뻔뻔함은 모두 일이란 이름으로 미화된다. 이전의 나라면 상상하기 힘든, 작은 나의 경계를 넘나드는 즐거운 줄타기다. 글쟁이들에 대한 글을 쓰던 문학담당으로서의 부담과 긴장, 국제부에서 느낀 언어에 대한 갈증 등도 모두 조금씩 나를 성장시킨 힘이다. 

하지만 성장한 것은 나만이 아니다. 처음 인연을 맺을 당시 나의 일터는 재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성원 하나하나가 모두 주인인 사원주주제 `독립언론'이다. 그 대가로 두툼한 월급봉투는 잃었지만 마음의 두께는 더욱 자랐다. 

물론 시련도 있다. 정신과 가치가 먼저인 `독립언론'은 물질이 앞서는 지금 시대와는 불화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 모른다. 또 효율만이 지상과제인 탓에 인간이 조직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지금 구성원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뚜렷한 사원주주제는 분열을 잉태한 비효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움과 그로 인한 치열한 논쟁은 언론의 본령에 더 깊이 다가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곳은 사람의 힘이 살아 있는 곳이기에 나의 믿음은 확신이 된다.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던 IMF의 위기를 오히려 `독립언론'이라는 배수진으로 정면돌파한 의지는 지금도 경향신문을 이루는 원형질이다. 바로 모두가 성장하는 사람의 문화가 숨쉬는 일터다. 

일은 나와 벌이는 승부다. 이런 승부의 마음으로 함께 세상을 마주할 동지들은 언제든 붙어라. 



[자료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