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최고의 이벤트 


최종면접에 합격한 지도 오랜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틈만 나면 흑백으로 출력해 아무렇게나 접어놓은 수험표와 합숙평가 때 목에 걸었던 명찰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오랫동안 몰래 몰래 꿈 꿔 왔지만, 너무 간절해서 오히려 막연했던 라디오 PD가 곧 저의 일상이 될 거라는 사실이 여태 실감나지 않습니다. 가히 2005년 최고의 이벤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 필기시험을 보러 가면서 절대 잃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던 자신감이 이후의 평가 과정을 지나는 동안 제멋대로 요동치는 것을 느끼면서 '정말 내가 라디오 PD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수없이 던져보곤 했습니다. 멋모르는 첫 도전이었기에 편안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욕심부려보고도 싶었던 복잡함이 공존했던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하고, 이왕이면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일'이 좁은 문으로 유명한 라디오 PD였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감히 '나의 꿈'이라고 얘기하기조차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직도, 신기합니다. 

우왕좌왕 갈림길의 연장선에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사람에 따라 그 활용의 방식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저는 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을 우선순위에 두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는 없었기에, 선택의 기로에 서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선생님들이 원하시는 대로 연습실에서 얌전히 시간을 보내는 학생이 되지 못했습니다. 라디오만큼이나 프로야구를 좋아하고, 대중음악 콘서트를 좋아했던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관중, 또는 관객이 되기를 즐겼습니다. 연습실이나 책상 앞에서 사회와 단절된 기분을 느끼며 괴로워하기는 정말 싫었습니다. 
여러 가지 관심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을 찾다 보니 PC통신 활동도 활발히 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에 호기심이 생기게 되더군요. 어느 샌가 슬금슬금 피아노에서 멀어질 궁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사회과학부로 대학 진학을 했지만, 일찍부터 몸에 밴 음악을 한 순간에 떨쳐 내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음악도 공부하면서 사회에 대한 관심도 놓지 않을 수 있는 음악학을 전공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입시를 치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학보사에 들어가 기자 활동까지 했습니다. 신기한 건, 하나씩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수록 이전까지 쌓았던 경험들을 어떤 식으로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한 때 언론인과 예술가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제가 할 일은 라디오 PD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는 뉴스채널을 비롯해 다양한 청취 층과 음악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일곱 개의 채널이 공존하는 KBS 라디오는 제가 거쳐 온 모든 삶을 조합한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더없이 완벽한 지향점이 된 셈입니다. 

대중교통과 함께한 '스터디' 
주변에서 방송사 입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매주 상당한 시간을 '스터디'에 투자하며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지만, 대학 마지막 학기와 입사 준비를 병행해야 했던 제게 '스터디'는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따로 공부할 시간과 공간은 물론, 가까운 곳에서 라디오 PD를 준비하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역설적으로 라디오 PD 지망생이라는 사실은 무척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책상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할 수 있는 '스터디'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러 차례 교통수단을 바꿔 타야 하는 왕복 3시간 가까운 통학 거리는 그 자체로 다채로운 '스터디'의 장이었습니다. 
밖에 나가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수많은 '소리'들을 접하게 됩니다. 유심히 귀기울여 본다면 그 '소리'들의 상당수가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실 겁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집과 학교를 오가는 동안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자연스레 듣게 되는 라디오 방송들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차를 갈아 탈 때마다 여러 방송을 토막토막 듣게 되는데다, 제 마음대로 주파수를 결정할 수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더 '살아있는' 공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시간대에 따라 기사 아저씨들이 라디오 방송을 고르는 취향을 나름대로 '통계' 내면서, 심심할 때면 기사 아저씨들을 상대로 프로그램 선호에 대한 '취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종종 KBS가 아닌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듣게 되는 경우에는 같은 시간대 KBS 프로그램과 비교 분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대중교통은 저의 '독서실'이기도 했습니다. 동네에 사는 학교 친구가 없다 보니 주로 혼자 다니게 되는데, 깜빡깜빡 졸 때도 많이 있지만 주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끔씩 차 안에서 '필 받은' 얘깃거리들이 논작문의 글감 후보로 낙찰되기도 하고, 문득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는 기획을 구성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라디오를 타고 떠나는 환상적인 여행 
2달 넘도록 진행된 입사 전형 과정이 제게는 짧고도 긴 여행과 같았습니다. 정말 원하던 라디오 PD가 되기 위해 꼭 넘어야 할 시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평소에는 좀처럼 챙기기 어려운 저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었던 매력적인 여정이었기에 더더욱 의미 있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흔히들 방송사 입사 과정을 '고시'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하지만, 적어도 KBS 입사 시험에는 '고시'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여느 고시처럼 일정 기간 반짝하고 집중하는 공부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남들이 걱정하듯 영어 점수나 학점 따위의 고만고만한 숫자들에 얽매여,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저의 조건에 괜히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한 해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든 모집 인원에 비해 100여명 가까이 늘어난 지원자들의 숫자만으로도 자신감을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논작문, 실무평가, 합숙, 최종 면접에서 정작 그런 '숫자'들이 가진 의미는 극히 작은 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전형 과정을 거쳐가는 동안, '평가'이기 이전에 제가 평소 동경하던 라디오라는 세계에 간접적으로나마 빠져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임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가까이 두고 좋아했던 라디오 분야에 지원한 만큼, 평가 내용 역시 대부분 제가 일상적으로 관심을 가져 온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처음 도전한 KBS 라디오 PD 시험에 덜컥 합격하게 된 것도, 어쩌면 이렇게 정신없이 쌓아 온 '내공' 덕택인지 모릅니다. 
이제 그 연장선에서 또 다른 여행의 출발점에 서게 됐습니다. 아직까지는 낯선 길을 떠나는 히치하이커처럼 설레고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꿈에서 본 거리' 또는 '익숙한 그 집 앞'을 서성대고 있을 제 모습을 상상하며, 저 쪽에서 달려오고 있는 '라디오'라는 이름의 거대한 캠핑카에 '히치'를 외쳐 보려 합니다. 

[출처: KBS 신입사원 입사후기]